옛날 어느 옛날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왕국은 원형으로 생겼는데 특이한 게 가운데 어마어마하게 높은 언덕이 있었습니다. 이 언덕은 구름 위까지 올라가 있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습니다.
“저기에 엄청나게 오래 산 마법사가 산대.”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마음의 돌을 준다는데?”
마음의돌.
그것은 이 왕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조그마한 돌멩이였습니다. 누가 그것을 준것인지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 돌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첫날밤 아이를 다른 방에 따로 재우면 다음날 아침 아이의 머릿맡에 마음의 돌이 놓여져있었습니다. 물론 숫한 사람들의 실수들로 마음의 돌이 없는 사람들도 꽤 존재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을의 변두리에 살고 있었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엡센트.
마음의 돌은 이 왕국의 축복이자 행운의 상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왕국의 다른 특이한 점은 바로 우리가 아는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엡센트를 제외하고는 말로 대화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색깔로 소통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특이했으며 가시광선내의 모든 색을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마음의 돌은 마음 속의 말을 색깔로 보여주는 신기한 돌이었습니다. 그들은 할 말이 있으면 이 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오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퍼시입니다.
물론 그에게도 마음의 돌의 이름이 있을수도 있지만 글로 보여주지는 못하는 점 이해부탁드립니다. 이름이 있는 걸로 보아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퍼시는 엡센트입니다. 그는 언제나 언덕위의 마법사를 궁금해했고 보기를 원하며 살아왔습니다. 퍼시의 부모는 어릴적 돌아가셔서 왜 퍼시에게 마음의 돌이 없는지 물어보지조차 못했습니다. 퍼시의 청소년시절은 자신이 엡센트라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엡센트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으며 분명히 자신은 선택받은 존재인데 무언가 어떤 불의의 실수로 자신이 이 마을에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퍼시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고 떠들며 다닙니다. 언젠가는 언덕위로 올라가 마법사를 만날거라고 그래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할 거라고. 사람들은 언제나 퍼시의 말을 무시하거나 혼쭐이 나도록 두들겨 팼습니다. 엡센트의 마을은 언제나 폭력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곳이었고, 하나의 희생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퍼시는 언제나 그런사람들의 먹잇감이었습니다.
“퍼시. 언제쯤 정신차릴래?”
“우리 동네북 얼마나 쳐 맞아야 본인의 처지를 깨달으실까.”
오늘도 퍼시는 마을의 어느 골목에 웅크려 누워있습니다. 방금전까지 신나게 두들겨 맞다가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떠났기 때문이죠. 퍼시는 한 번도 운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마법사가 자신을 위로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퍼시는 한 번도 외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차가운 눈송이 하나가 퍼시의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한송이. 두송이. 퍼시를 위로하듯이 퍼시 위를 감싸안습니다.
“내게로 와.”
퍼시의 두 눈이 번쩍 뜨입니다. 확실합니다. 마법사의 목소리입니다. 퍼시는 그것이 자신에게 온 계시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퍼시는 언덕위로 올라갈 준비를 열심히 합니다. 닥치는대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언덕위를 오를 준비를 합니다.
“좋아 먹을것도 준비됐고, 옷이랑 모자랑.”
새벽의 서늘함도 퍼시를 막지 못했습니다. 퍼시에겐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언제 추운 겨울이 올지 몰랐기 때문이지요. 당장 지금 떠나서 어떻게든 빨리 마법사를 만나야만했습니다. 달이 떠있는 새벽이었습니다. 온 별들이 퍼시를 응원하는 듯했습니다.
‘퍼시.퍼시.퍼시.우리 자랑스러운 퍼시. 대단해. 멋져. 자랑스러워.’
눈을 감으면 그렇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나는 태어났어요.”
그가 중얼거립니다. 그것은 주문과 같아서 퍼시의 몸이 뜨거워지는 듯했습니다. 언덕은 생각보다 낮았으며 그곳은 처음보는 꽃들과 동물들로 가득했습니다. 퍼시는 이 길을 여행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을 정도였죠. 그렇게 즐겁게 걷다가 퍼시는 무언가 엄청나게 높은 문을 발견합니다. 퍼시가 문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단단한 절벽이었으며 절벽은 구름위까지 쭉 뻗어있었습니다. 사실 멀리서 봤을 때도 절벽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가파를 줄을 상상도 못하고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퍼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준비해온 장비들로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지요. 절벽중간중간에 있는 틈에서 조금씩 쉬면서 퍼시는 끝없이 절벽을 오릅니다. 그러다 준비해온 음식이 다 떨어집니다. 엄청난 힘이 들었기 때문에 퍼시는 잠시 눈을 붙입니다.
“안돼. 퍼시. 일어나.”
퍼시가 번쩍 눈을 뜹니다. 잠시 눈을 붙인다고 생각한 퍼시의 몸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식은땀이 주륵주륵 흐릅니다. 내가 왜 여길 온다고 했을까. 여기서 죽는건 아닐까. 이미 한참을 올라왔기 때문에 더 이상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퍼시는 죽을 힘을 다해 절벽을 다시 오릅니다. 후회와 불안이 퍼시를 덮칩니다.
“마법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사실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어떡해?”
절망.
퍼시는 끝없는 절망에 절벽에서 손을 놓칩니다.
아아. 얼마나 덧없는 인생이었나. 퍼시는 어린시절 기억이 주마등으로 스치는 것을 경험합니다. 언제나 멸시와 조롱으로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따뜻함을 준적이 없었죠. 하지만 마법사라는 존재는 그의 마음속을 따뜻함으로 덮어주는 존재였습니다.
그에 대한 희망. 환상. 위로. 감동.
기절했던 퍼시는 어딘가 따뜻한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 희미한 꽃향기. 몸이 말 안들어서 퍼시는 가만히 눈을 뜹니다. 여기가 그럼..
“천국도 지옥도 아니에요.”
여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는 서늘함도 느껴져서 퍼시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당신은 선택받았어요. 축하해요.”
목소리에 이어 차가운 물수건이 머리위에 바로 올려졌습니다.
“열이 심해요. 좀 쉬어요. 다 나으면 성을 구경시켜줄게요. 주인님도 당신을 보기를 고대하고 계시..”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전에 퍼시는 다시 기절합니다.
퍼시는 열에 들떠 아득한 꿈을 꿨습니다. 자신이 꽃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꽃잎을 하나씩 떼어갔습니다. 뜯지 마세요. 아프다고요. 아무리 소리를 쳐도 사람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온몸이 찢여져나가는 고통. 비명. 한 번도 그가 느껴보지 못했던 살얼음 같은 공포가 그를 덮쳤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퍼시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일어났네요.”
차가운 그러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기괴하게 비쩍마른 한 여자가 그를 멀찍이 서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금발머리를 틀어 올린 얼굴은 아무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창백함이 느껴졌습니다. 살아는 있는 걸까. 그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그 기다란 손이 퍼시의 이마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퍼시는 흠칫 놀라며 손에서 떨어졌습니다. 손은 너무도 차가웠고 살아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그런 촉감이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거죠?”
“언덕 위. 항상 그곳을 바라보던 소년을 저희 주인님은 언제나 주의깊게 살펴보셨죠. 여기는 당신이 꿈에 그리던 그곳이에요. 떨어지던 걸 주인님이 마법으로 건져올리셨어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곳에 왔다는 사실에 기쁨이 찾아온 것도 잠시. 퍼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죠? 나는 끝까지 올라오지 못했는데. 나를 받아준 이유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인간의 특권이죠. 그 마음을 심어준 것도 저희 주인님이랍니다.”
“그래야…”
“그래야 진심으로 주인님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골라낼 수 있기 때문이죠.”
퍼시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에 마법사가 실망했을 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퍼시는 힘을 내서 열심히 밥을 먹고 산책도 하며 몸을 회복합니다. 여자의 이름은 안드레아. 이 성의 유일한 관리인이라고 했습니다. 성은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탈로 지어져 있었는데, 그 넓은 정원에 꽃 한송이 없었습니다. 성은 몹시 추웠고 항상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눈송이를 손으로 받으며 퍼시는 물었습니다.
“마법사는 언제 볼 수 있는거죠?”
“아직. 당신이 빛의 언어에 익숙해져야 해요.”
안드레아는 퍼시를 굉장히 넓은 홀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은 그림으로 빽빽하게 채워져있었죠.
“이게 다 뭐죠?”
“열심히 읽으세요. 그리고 알아내세요. 주인님이 당신에게 하려는 말을.”
퍼시는 매일매일 그곳에 나와 그림을 보았습니다. 언뜻보기에는 자연을 그린것처럼 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퍼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에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은 이야기를. 그 다음은 묘사를. 차근차근 그 언어들을 이해하게 될 때쯤 퍼시는 안드레아에게 묻습니다.
“안드레아. 여기 그림들에는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죄다 마법사를 보러 여행을 떠난 사람들 이야기잖아.”
“맞아요. 그분 이야기는 그분에게 직접 들으세요.”
“그런데, 여기 왔다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안드레아는 순간 서늘하다 못해 보는사람조차 얼어붙게 만들것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게 궁금하다면 이제 주인님을 만날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안드레아는 그동안 못보던 큰 문 앞으로 퍼시를 안내합니다.
“여기로 들어가면 주인님을 뵐 수 있어요.”
퍼시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마법사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 원형의 방이 나타났습니다. 원 가장자리로 조그만 길이 나있었고, 방 가운데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얼음조각상이 곳곳에 널려있었습니다. 그리고 퍼시의 정확히 반대편 원 끝 쪽에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서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마법사가 말하는 빛의 언어를 대신해서 퍼시의 언어로 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퍼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대단해.”
“그동안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을 보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알아요?”
“다 알아. 퍼시 너의 모든 어릴적 모습을 다 보고 다 그림으로 그려놨어.”
퍼시는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그럼 그동안 왜 나를 혼자 두었나요. 직접 찾아올 수도 있었잖아요.”
“퍼시. 나는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왜죠?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퍼시가 한발자국 마법사에게 다가가려하자 그가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안돼. 퍼시. 나와 정확하게 반대로 움직여야 해. 나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너가 큰일날 거야.”
퍼시는 곧 알아듣고 시계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법사도 똑 같은 속도로 시계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죠.
“이 조각상들은 뭐죠? 뭔가 아름답긴 한데 뭘 조각한 거에요?”
빛나던 마법사의 몸이 갑자기 힘을 잃었습니다. 희미해진 빛으로 마법사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던 침묵속에 퍼시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 조각상들은 그래도 행복했겠어요.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어서.”
그제야 마법사의 몸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신나게 이어서 했지요. 그동안 퍼시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못되쳐먹었는지. 그런 퍼시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둘은 할 애기가 아주 많았죠. 하지만 퍼시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습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마법사곁으로 조금도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이죠.
“당신 곁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제 퍼시는 안드레아 만큼이나 앙상하게 마르게 됩니다. 마법사에 대한 갈망이 그를 덮쳤죠. 어느 날이 었습니다. 하늘에선 여전히 눈이 내리고 마법사의 몸은 영롱하게 빛나는 평범한 날이었죠. 퍼시의 두눈이 광기로 어른거리게 됩니다.
“믿을 수 없어. 당신이 진짜 마법사라면 나를 곁에 가게 허락할 거야.”
“아니야. 퍼시. 내 말을 들어. 그러지 마.”
“아니?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퍼시는 성큼 마법사 쪽으로 한 걸음을 내밉니다. 퍼시는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흠칫 놀라게 됩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그를 덮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 퍼시는 다시 떠올립니다. 자신을 늘 위로해주던 마법사. 그에게 다가가면 이런 추위 따위 아무 소용없게 될 것이라고. 다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섭니다. 섬뜩한 추위에 퍼시의 두 손의 손톱이 까맣게 물듭니다.
“퍼시? 지금도 늦지 않았어. 뒤로 물러나.”
퍼시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그토록 원하던 마법사의 곁에 도착했는데 자신은 너무도 외로웠습니다.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한다면 이게 나의 결말이라면 나는 차라리..
마지막 한걸음. 퍼시가 걸음을 내딛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얼어붙게 됩니다.
똑똑. 안드레아가 방안으로 들어옵니다.
“새 크리스탈이 만들어졌군요. 마침 아기가..”
“안드레아.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이건 퍼시야. 그렇게 부르도록 해.”
“네 주인님. 죄송합니다. 새 아기가 마침 태어났습니다. 이제 퍼시를 보내도록 할까요?”
마법사가 퍼시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마법사의 눈물이 퍼시의 얼어붙은 손끝에 닿자 얼음조각이 톡 떨어졌습니다. 곧 그것은 투명한 돌로 변하게 됩니다. 마법사가 돌을 안드레아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도록 해.”
마법사는 창문을 열고 퍼시가 오기 전 늘 그랬던 것처럼 언덕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자신을 그리워하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